새 옷만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임금님이 있었다. 두 재단사가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으로 옷을 만들겠다고 했다. 옷이 완성되었다고 하자 임금님은 그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했다. 길 가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임금님의 옷을 칭찬했다. 그 때 한 어린이가 외쳤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임금님은 창피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 행차를 이어나갔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듣고 싶은 것만 듣느라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권력자와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과 불의를 못 본 척하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이라는 음모론에 취하고, ‘그것을 보지 못하면 바보’라는 프레임에 갇힌 어른들 속에 파묻혀있으면서도 권력이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는 어린이 같은 이가 나타나기를 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이 자진 사퇴한 지 이틀 만인 지난 4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에 이진숙(63) 전 대전 MBC 사장을 지명했다. 이 후보자는 지명 발표 직후 “공영방송, 공영언론이 정치 권력과 상업권력의 압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노동 권력과 노동단체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노총 조직원이 공영방송이나 공영언론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민주노총이나 일부 언론노조의 지도부가 전체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를 향상하고, 사회 통합과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 힘쓰기 보다는 자신들이 속한 소수집단의 이익에 더 충실하여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언론노조의 핵심적 역할이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에 대한 견제를 통한 언론의 독립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두 거대권력과 노동운동을 병치하는 전도된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이런 후보자가 언론인으로서 어떤 일들을 벌여왔을지 굳이 들추지 않아도 다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자질이 의심스럽고, 야당의 반대가 극렬함에도 불구하고 윤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방송장악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잠재워 여론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싶은 허황된 욕망 때문일 것이다. 윤대통령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느라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동화 속의 ‘벌거벗은 임금님’과 닮아있다. 다만 동화 속의 임금님은 행차를 이어가더라도 창피함은 아는데 지금의 윤대통령은 그마저도 몰라 보이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앞으로 2년 10개월! 갈 길이 멀고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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